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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왕후 신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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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인도와 금관가야가 만나는 신행길을 재현하다. 2000년 전 인도와 금관가야가 만나는 신행길을 재현하다. - 낙동강 대저생태공원에서 진행된 허왕후 신행길 축제 9월 6일은 허왕후 신행길 축제 이틀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 축제가 열리는 장소는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대저생태공원이지요. 전성기 금관가야는 강성한 나라였습니다. 6가야 연맹의 맹주로 낙동강의 패권을 두고 신라와 다툼을 벌인 역사가 이를 말해줍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황산강 전투가 이것인데, 여기서 황산강이란 지금의 낙동강을 말합니다. 지금은 표기법이 사라진 아래아를 써서 ᄒᆞᆼ산에 가까운 발음인데 이것이 변화하여 황산으로 되었습니다. 이 “ᄒᆞᆼ”은 “크다.”, “아름답다.”란 뜻인 옛말 한과 통합니다. “넓은 들을 지나는 큰 강”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의 이름인 낙동강 역시 금관가야와 연..
인도에서 가야까지,,,긴 여정을 마치고 잠든 허왕후릉을 찾아서 ▲ 허왕후 묘소 전경 載厭緋帆茜旆輕 (재염비범천패경) 석탑을 실은 붉은 돛대 깃발도 가볍게,乞靈遮莫海濤驚 (걸령차막해도경) 신령께 빌어서 험한 물결 헤치고 왔구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허왕후에 대한 기록 중 한 구절입니다. 배를 타고 가야로 온 항해에 대한 묘사이지요. 붉은 돛대 깃발도 가볍게 왔다 함은 허왕후가 배를 타고 금관가야에 온 것을 쓴 것입니다. 배의 운행은 날씨에 좌우 되지요. 아마도 선원들은 배의 무사항해를 빌었을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석탑은 파사석탑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허왕후가 아직 왕후가 되기 전 동으로 가려 했지만, 수신의 노여움을 사서 가지 못했다고 나옵니다. 이는 뱃길의 어려움 혹은 선원들의 두려움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요. 이에 당시 허황옥의 아버지는 파사석탑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