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生/보다 - 見

제주 4.3 70주년 블로거 모임 - 4.3을 배운다 1



출발은 김해공항. 


 3월 22일, 23일은 제주도에 갔었습니다. 울산누리 블로그 기자에서 몇명을 선발해서 "제주 4.3 바로알기"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거창한 기준은 아니고,,,, 선착순. 주중 2일을 내기 위해 3월은 미친듯 일을 했습니다. 울산에서 차를 타고 오신 담당자님과 다른 두 분의 블로거를 김해공항에서 합류. 




4.3의 상징인 동백꽃. 

 

 제주에 도착하니 제주도청 담당자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이름표 뒤에는 동백꽃 뱃지가 있습니다. 동백꽃은 4.3의 상징입니다. 봄에 피는 동백은 붉은 색이지요. 제주 4.3이 봄에 일어났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동백은 그런 의미입니다.  




▲ 제주도청.  


 버스로 제주도청으로 향합니다. 2018년은 4.3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전국 블로그 모임을 올해 가진 것도 이런 의미입니다. 오랜동안 4.3은 말할 수도 없었던 악몽이었습니다. 70년대 유신시절 소설가 현기영은 "순이삼촌"이라는 4.3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 이어지는 강의.  


 자신을 "제주농부"라고 소개하는 김종민 강사의 강의를 듣습니다. 4.3이라는 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국제정세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평양전쟁과 남북의 분단으로 이어진 긴장은 4.3의 비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20대 젊은 기자가 평생을 걸쳐 정리한 4.3의 역사를 듣습니다. 




▲ 4.3 평화 기념관. 

 

 다시 제주도청에서 4. 3 평화 기념관으로 이동합니다. 공식적으로 정부가 4.3에 대한 사과를 한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했을 당시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더 빨리 했어야 했다."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4.3의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때, 그들의 눈물을 위로했어야 했습니다. 




▲ 김종민 선생님과 돌아보는 4.3 기념관. 

 

 4.3이 더욱 비극인 것은 피해자들이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가족은 보상은 커녕  연좌제로 인한 피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돌아본 4.3 기념관과 4.3 평화공원이 조성된 것도 최근의 일이지요. 




▲ 제주대 사학과 학생들과 함께,,, 


 젊은 학생들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니 "제주대 사학과 학생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외지,,, 그들의 말로는 "육지 사람들"의 눈이 아닌 이들에게 4.3은 어떤 의미일까요? 옆집 아재의 할아버지, 우리 증조 할머니,,,, 몇 단계 거치면 바로 연결되는 비극. 




▲ 피해자들의 묘비에 머리를 숙인다.  


 마지막으로 피해자들의 묘비에 머리를 숙입니다. 전날 내린 눈으로 공원은 온통 눈밭이더군요.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묘비들의 이름. 4.3이 제주도에 어떤 의미였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미지였습니다. 첫날 일정은 이것으로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