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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辯/영화

상갓집 개 - 영화 "공자 - 춘추전국시대"



아무리 봐도 선전문구는 낚시용.



중국에서 자신들의 영웅 - 특히 옛 인물 - 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영화는 몇가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되는데


첫째가 공산당의 검열,  둘째는 창작자의 자체검열이다.


저한시대 한고조가 유교를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선택한 이래 공자는 거의 신의 영역이었다가


문화대혁명에 와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제 다시 띄워줄 필요가 있으니 땟깔이 좋은 영화가 거들뿐,,



홍위병들이 공자사당에서 유물을 파괴하는 모습. 공자 재조명에는 그 세대의 죄책감이 없을까? 


기록에 남은 공자의 모습을 재조명하여 영화를 만든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게 극적 재미를 위해서 역사적 사실을 희생한 셈.


예를 들어 안회가 죽는 장면이 그러하다.


딱 하나 재미라면 논어에 나오는 공자어록을 찾아보는 재미인데, 안타깝게도 가장 좋아하는 상갓집 개는 나오지 않아 실망.





   孔子適鄭 與弟子相失 孔子獨立郭東門 鄭人或謂子貢曰 東門有人 其類似堯 其項類皐陶 其肩類子産 自然腰以下 下及禹三寸 廐廐若喪家之狗

  공자가 정나라를 방문했다. 제자들과 같이 있다, 서로 놓쳤다. 공자가 홀로 동문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정나라 사람이 혹여 보지 못했냐는 자공의 물음에 답하길 "동문에 한 사람이 서 있었네, 이마는 요(堯)임금과 같았고, 목은 순(舜) 우(禹)임금과 같았으며, 어깨는 명재상(名宰相) 자산(子産)과 같았지. 그러나 허리 아래로는 우(禹)임금에게 세 치쯤 미치지 못했고, 그 지친 모습은 마치 '상갓집 개[喪家之狗]'같더구만."

 예의를 갖추면서도 날 서린 비판이랄까요? 묻는 자는 공자의 제자고 스승을 찾기 위해 눈이 벌개져 있는 형상이니 깐죽거렸다간 무사하지 못했을터. 앞의 여러 표현들은 상가지구를 덮기 위한 사탕발림입니다. 전설 상 인물인 요,순,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성공한 명재상 자산과 비교를 하다니..... 그러나 절묘하게 기상이 그렇다니 행동거지가 그렇다니 품격이 그렇다니 그런 이야기는 덮어버리고 생김새로 비유를 합니다. 띄워준 것이 지나친듯 하여 "우임금에게 허리 아래가 세 치 미치치 못했다"로 균형을 맞추고 상갓집라고 절묘한 마무리.

 子貢以實告孔子 孔子欣然笑曰 形狀末也 而似喪家之狗 然哉然哉.

 자공이 그 사실을 공자에게 고했다. 공자가 기뻐  웃으면서 말하기를 “모습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나 상가의 개와 같다는 말은 그렇도다. 그렇도다.

  언제나 충실한 자공이니 스승에게 일어난 일을 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승님.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어느 현인이 스승님을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마지막에 알듯 말듯한 소리를 했는데, 스승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앞의 표현은 독이 든 성배. "내가 좀 잘났지. 에험" 하고 받았다간 "그 자가 그리 잘났는가? 아님 성인이 못났다는 말인가?" 까이기 딱 좋죠.

 역시 노련하지만, 충실한 제자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는 한 마디

 形狀末也 모습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지."

 그리고 역시 앞의 공격을 우문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답 
 
 而似喪家之狗 然哉然哉 " 상가의 개와 같다는 말은 그렇도다. 그렇도다."

 옛부터 개는 집을 지키기 위해 키우는 동물입니다. 지금이야 결혼식 뿐 아니라 장례식도 전문식장이 따로 있지만, 관혼상제를 다 집에서 치르던 옛날 가족 외 사람을 보기만 해도 짓는 개도 상가가 되어 온갖 사람이 들락거리면서 귀찮은 존재로 전락합니다. 저 놈의 개 왜 저리 짓누. 지나가던 사람에게 얻어 터지기도 하지만,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터라.....

 정나라 사람은 전란의 시기에 인의를 이야기하는 공자가 우습기도 해서 한방 쏘와 준 것이고,
 공자는 그런 표현을 절묘하다고 인정합니다.

 
 예전에 썼던 글

 

 장례가 끝나고 천덕구러기였던 상갓집 개도 다시 필요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