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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生/보다 - 見

울산팸투어 01 - 요람기의 돌무더기를 지나 언양을 맛보다 - 언양읍성 & 언양불고기


"옛 언양읍성을 거닐며 팸투어를 시작"


언양읍성은 조선시대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합쳐져 이곳도 울산시에 소속되어 있지만, 조선시대 독립적인 행정구역이었습니다. 동쪽의 울산, 예나 지금이나 울산과 많은 교류가 있는 북쪽의 경주, 남쪽으로 곧장 달리면 연결되는 양산, 서쪽으로 가면 나오는 밀양. 이 네 도시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지요. 




▲ 고지도에 전하는 언양읍성의 모습. 읍성마을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처음 언양읍성은 지금의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조선 초기만 해도 흙으로 된 토성의 형태였습니다. 토성이 돌로 만든 석성이 된 것은 연산군 6년의 일입니다. 둘레가 대략 1000m에 높이 4m의 석성을 쌓는 일입니다. 인력도 그렇고, 비용도 그렇고 꽤나 부담이 가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 읍성 안, 옛 성 안 4거리는 이제 논이 되었다. 


"흥청망청" 국고를 낭비하던 연산군 치하에서도 공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이 사실은 언양읍성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성곽양식으로는 드물게 평지에 쌓은 네모 반든한 성이지요. 울산투어 첫 코스가 이 곳 언양읍성이 된 것은 이런 의미일 것입니다. 



▲ 성 안 식수를 공급하던 우물. 


"복원을 시작한 언양읍성"


언양읍성 안에 있는 우물입니다. 지금은 농업용수로 쓰이는 모양입니다. "농성"이란 성 안에 틀어박혀 적의 공격을 버텨내는 일이지요. 무엇보다 물의 확보가 중요했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에 등장하는 성에 대한 묘사는 한결같이 비슷합니다. 성의 둘레가 얼마이며, 성벽의 높이가 얼마이며, 성으로 통하는 문이 몇인가,, 그다음 등장하는 것이 우물의 수이지요. 



▲ 객사 자리인 언양초등학교, 이전 후 복원 예정.


언양읍성의 북쪽은 옛 모습 그대로이며, 남쪽은 사라진 것을 복원한 것입니다. 북쪽 성벽도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요. 일제시대부터 관리하는 사람이 사라진 읍성은 조금씩 조금씩 망가져 갔습니다. 옛 관공서인 객사 자리에 초등학교가 들어선 것이 시작입니다. 



▲ 고즈넉한 분위기의 벽화마을. 


결정적으로 망가진 것은 언양읍성 남쪽에 위치한 태화강 제방을 쌓으면서 입니다. 언양읍성 남문 영화루부터 가장 가까운 태화강 다리 태화루까지 직선거리는 300m 남짓입니다. 일제시대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으면서 가까이 있는 언양읍성의 돌을 가져다 쓴 것이지요. 



▲ 오영수의 요람기에 나오는 성터 돌 무더기는 어디 쯤일까? 


남문 "영화루"가 복원되고 남쪽 성벽이 세워졌습니다. 다음은 동헌과 객사입니다. 동헌은 지방수령이 업무를 보던 곳이라면, 객사는 일종의 관사입니다. 지방수령의 격에 어울리게 당당하고 권위적인 건물이지요.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언양초등학교를 이전하는 것도 언양읍성 복원 계획의 일부입니다. 




▲ 무너진 성터 돌무더기는 이제 복원되어 옛 모습을 찾았다. 


 아참, 언양읍성을 찾으실 분이라면 오영수 작가의 "요람기"를 읽어보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오영수 작가의 고향은 이곳  언양입니다.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성터 돌무더기"란 이곳 언양읍성을 말하지요. 너무리를 잡기 위한 아이들의 모험도 이곳에서 펼쳐진 일입니다. 



▲ 금강산도 식후경 


"언양의 맛, 언양불고기"


자, 언양읍성을 한 바퀴 돌아봤으니, 슬슬 배가 고파지는군요.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습니다. 언양에 왔으니 언양불고기가 제격이겠지요. 옛부터 언양에서는 소를 많이 키웠습니다. 오영수의 "요람기"에도 아이들이 소를 몰고 먹이를 먹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난히 가난했던 주인공의 묘사는 "소가 없었다."로 표현될 정도입니다. 




▲ 천상의 맛, 언양불고기.


 숮불 위 불고기는 이내 냄새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석쇠에 올려진 불고기는 금방 익습니다. 초벌구이가 되어 나오기에 그러합니다. 상추에 불고기를 올리고 양념에 버무려진 파와 고추, 마늘 한 쪽을 더합니다. 천상의 맛. 이것이 바로 언양의 맛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