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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70주년 블로거 모임 - 4.3을 배운다 2



▲ 동광마을 4.3길.  


 둘쨋날 일정의 시작. 동광마을 4.3길로 출발합니다. 영화 "지슬"로 잘 알려진 "동광 큰넓궤"와 그 주위 4.3 유적을 탐사하는 일정입니다. "궤"란 제주도 말로 "동굴"이란 뜻입니다. "큰넓괘"를 해석하면 "크고 넓은 동굴" 쯤 되겠네요. 들어가기 전에는 몰랐는데, 들어가는 길은 꽤나 좁고 고생스럽습니다. 




▲ 동광 큰넓궤로 가는 길.  


 동광 큰넓궤로 이동합니다. 평소에는 입구를 잠궈두는데, 안전문제 때문입니다. 저희를 위해 특별히 오픈해 주셨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안전모와 작업장갑으로 중무장. 처음에는 이럴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들어가보니 바로 이해가 되는 안전장구였습니다. 




▲ 큰넓궤 입구. 


 영화 "지슬"은 4.3 사태 때, 동굴로 몸을 피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지슬"이란 제주말로 감자이지요. 동굴안에 감자를 싸 가지고 가서 그것을 먹으며 버텼다는 이야기인데,,, 생존자 분의 증언을 보면 감자도 금방 떨어져 주로 남자 어른들이 한밤 중에 먹을 것을 찾으로 동굴 밖을 나갔어야 했다고 하더군요. 




▲ 동굴 안 건진 사진.  


 카메라를 들고 동굴 안에 들어섰지만, 사진은 몇장 못 건졌습니다. 워낙 어두운데다, 렌턴도 없었어요. 카메라 ISO를 최대한 올린 것이 저 정도입니다. 그나마 제가 쓰는 삼양 24mm는 수동이라 어둠 속에서 촛점 잡기가 자동카메라보다 훨씬 쉬워도 저렇습니다.  점점 좁아져 포복으로 기어야 할 정도로 들어가는 길은 좁습니다. 




▲ 홍춘호 할머님과 만남.  


 마을을 둘러 보는 것은 4.3 생존자인 홍춘호 할머님과 함께 했습니다. 번성한 마을이 사라진 것은 "초토화작전" 때문입니다. 해안선에서 일정 간격을 띄워 선을 긋고 그 안에 있는 마을과 사람들을 말 그대로 "초토화"시킨 무시무시한 작전. 전쟁터의 적군 군인이 아니라 평화로운 민간인을 상대로 벌인 일이라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11살 소녀가 겪었던 비극. 

 

 4.3 때, 11살 소녀는 이제 81세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담담하게 말씀하시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비극이지요.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슬픔을 삭히고 담담하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요? 일가족 중 돌아가신 분들보다 살아남은 분들의 수를 세는 것이 빠르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 또 다른 4.3 유적지, 섣알오름.  


 섣알오름으로 이동합니다. 일제는 제주를 군사기지로 만들었습니다. 아래 비행장이 있고, 오름 위에는 고사포 진지를 구축하는 식이지요. 해방이 된 후 이곳은 4.3 군의 관리 하에 들어갑니다. 추정이지만, 4.3 사태 때 민간인이 학살된 이유도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섣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추모비 앞 고무신 한쌍은 의미가 있습니다. 끌려가며 사람들은 가족들에게 표시를 남기고자 했습니다.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곳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 봤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고무신인데,, 이곳에서 보니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이것으로 4.3 일정은 공식적으로 끝입니다.